이고 진 저 늙은이 짐은 누가?(2022.10.17.)
한때 떵떵거리고 잘살다가 늘그막에 가서는 폭 망하여 볼품없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군자 말년에 배추씨 장사한다.”라는 속담을 요사이 내 처지에 비추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학교 다닐 때 배운 시조 ‘훈민가 16수’ 중 하나인 ‘반백자불부대(班白者不負戴)’라는 내용의 시조가 떠올랐다.(정철의 훈민가는 ‘유교적 이상에 따라 통치되는 이상적 국가의 건설’을 위해 유교적 윤리도덕을 실천하도록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어 보급한 연시조임)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우랴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위 시조는 정철(1536~1594)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였던 1580년(선조 13년) 정월부터 1581년(선조 14년) 3월 사이에 지었던 단가로서 유교적인 윤리관에 근거하여 노인에 대한 공경의 마음을 가지도록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며, 유교가 지상 규범이었던 그 당시에도 사대부인 정철의 눈에 젊은이들이 늙은이에 대한 공경의 자세가 미흡하다고 본 것이리라. 하기야 기원전 1700년 경 제작된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익히 가사문학의 대가로 잘 알려진 정철은 우리말과 글로 가사를 지어 우리 문학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으며 성산별곡 등 4편의 가사와 훈민가 등 107수의 시조를 남겼다. 풍류를 즐기며 원칙과 소신에 따른 관료였으나 술버릇이 고약하며, 정치적으로는 그의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상반되는 인물로서 당시 사대부 양반들인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에서 동인이 가장 기피하고 싫어했던 서인의 영수였다. ‘오로지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보호하며 강개한 곧은 말만’하고 ‘평소 지닌 품격이 소탈하고 대범하며 타고난 성품이 맑고 밝아’ 정철을 君子라고 칭송한 사람도 있었지만, ‘탁한 것을 몰아내고 맑은 것을 끌어 들인다’는 명분으로 상대방인 동인을 전멸시키다시피 탄압하였으며, 술과 여색으로 재산을 탕진하여 말년에는 유배지에서 굶어 죽은 정치인이었으며 그의 강직함을 칭찬했던 국왕인 선조조차도 정철을 독철(毒澈)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는 문반과 무반의 중앙집권적 양반관료제를 정치 체제로 하여 사대부들이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여 온 나라의 부가 양반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이 시조가 탄생된 16세기 말에는 그래도 양반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었겠지만 당쟁으로 인해 사화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양반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하기만 했을까? 그 당시 신분의 부침이 심해 아무리 과거에 급제한 인재라고 하더라도 양반이라는 신분만으로는 노후에 이고 진 늙은이 신세를 면하게 될 수는 없었으리. 양반이 그럴진대 평민들이야 오죽했을까.
(참고로 17세기 말에는 양반의 구성 비율이 전체 인구의 1할에 불과했으나, 평민 중에서 ‘족보를 위장’하거나 ’호적에 양반으로 위장‘하는 등의 수법으로 19세기 중엽에는 양반의 구성 비율이 7할까지 뛰어올랐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시조 속에 나오는 그 당시의 늙은이는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겠다. 먼저 한 부류로는, 양반이든 아니든 간에 나이는 들었으되 먹고 살만할 정도로 경제력이 있거나 또는 자식 농사를 잘 지어서 후손한테서 봉양을 잘 받기 때문에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면 굳이 본인이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사는 늙은이를 상상해 본다.
그 늙은이는 과거 젊었을 때부터 조상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아 여전히 부유하고 행복하였거나 아니었더라도 아끼고 열심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 노력과 행운이 늘그막에 빛을 보게 되었으며, 자신에게 안락함을 가져다주는 경제적인 부를 자손 대대로 이어지게 염원하며 확실히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고 또 죽어서도 저 먼 곳에 또 다른 좋은 세상이 있다면 그 곳에 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평소에 자주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한 부류는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먹고 살기가 팍팍하여 저승도 싫지만 이승이 죽기보다도 싫었었던 늙은이가 아니라면, 당초 양반에 소속은 되었으나 본인과 후손이 과거 시험에 낙방하여 양반의 특권을 잃고 국가로부터 녹봉도 기대할 수 없으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주색잡기로, 아니면 지독하게도 운이 없어서 모두 탕진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부류의 늙은이는 그야말로 이고 진 저 늙은이가 되어 동가숙서가식 하는 신세의 나그네로 전락하여 그래도 먹고 살려고 군자 말년에 배추씨 장사하는 모습이 충분하게 상상이 된다. 무더운 여름날 온 고을사람들이 모이는 장날에 남의 가게 옆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끼어서 쪼그려 앉아 잘디 잔 배추씨, 무우씨를 늘어놓고 단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뭇 아낙네들과 흥정을 하는 불쌍한 이 늙은이가 서산에 해는 지고 아침에 가져나온 배추씨는 다 팔지도 못하여 배고픈 서러움을 달래며 봇짐을 머리에 이고 터벅터벅 정처 없이 걸어가는 모습이란.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떵떵거리고 살면서 백성들에게 노인을 공경하도록 교화하며 잘나가던 좋은 시절에 그 늙은이를 봤을 때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스스로 생겨 늙은이 짐을 손수 또는 하인에게 시켜 대신 지려고 했을까? 명나라에 거짓문서를 보낸 사건으로 인해 봉고파직 당하여 강화도로 유배되고 그곳 백성들에게도 인심을 잃어 주변에서 최소한의 먹을 것마저 제공받지 못해 58세에 굶어 죽은 정철이 말년의 비참함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랬으리라.
원래 말년의 인생은 고독하기만 하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 상위 1%는 우리나라 전체 자산의 25.4% 정도를 보유하고 있고 갈수록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하니 이고 진 늙은이 신세의 말년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과거 경험이 내일의 생각과 행동, 처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닐 수도 있다면 이 또한 어떠하리. 오늘 열심히 산 하루는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일을 약속하지 않으니 모두가 내 운이며 내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에게 내 짐을 벗어 줄 수 있으랴.
작가 : 블로그 주인 아버지
최종 수정 날짜 : 202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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